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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교양

[유럽의 역사] 1. 두 발원지의 결합으로 형성된 문화

by 나비야 202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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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아일랜드의 작가 조이스(Joyce)는 1922년에 놀라운 작품 <율리시스 Ulysses>를 선보였다.

 

이 소설은 아일랜드의 소시민* 블룸Bloom이 1904년 6월 16일 더블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내용이다. 조이스의 팬들은 이 특별한 날을 "블룸의 날 Bloomsday"로 기념한다.

 

*소시민: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동의어: 소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르주아는 중세 유럽 도시에서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사람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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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율리시스라는 제목은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으로, 이 작품은 그의 모험을 담은 오디세이아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집필되었으며, 영문학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은 중년의 사업가로, 소설은 그가 하루 일과 속에서 다양한 사건 및 인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스스로의 존재, 성욕 등에 사색하는 내용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서술 방식 및 문체가 계속해서 바뀐다. 어떤 장은 대본 형식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어떤 장은 교리문답 형식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마지막 장은 어떤 문장 부호도 사용하지 않았다.

 

조이스는 유대인 출신이며, 작품에서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서양 문화의 두 가지 핵심 흐름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서양 문화의 젖줄인 이 두 강 중에서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발원하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에서 발원한다. 이 두 강줄기는 모든 축복 문화에 영양가 높은 이야기들을 공급하는 두 가지의 중심적인 텍스트다.

 

문화는 사회를 결합하는 공동의 이야기이자 보물과도 같다. 특히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사회 구성원에게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럽사를 알아보기 이전에 그 근간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 Troy, Giovanni Domenico Tiepolo

 

 

유럽 문화의 핵심 텍스트는 다음 두 가지로 구성된다:

 

1. 그  하나는 유대인의 <Bible, 성서>이며

2.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가 트로이를 포위한 사건에 관한 <일리아스 Ilias> (트로이는 그리스어로 일리온 Ilion이다), 그리고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가 파괴된 트로이에서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오디세이아 Odyssey>라는 양대 서사시다.

 

 

여기서 말하는 트로이 전쟁이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가자 이에 분노한 그리스인들이 분노해서 벌어진 전쟁이다. 참고로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도시로, 고전기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와 함께 가장 강력한 폴리스였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이 전쟁이 올림포스의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를 두고 다투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묘사한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심판을 부탁했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해 보답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를 받는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스파르타의 왕비였다는 것.

 

그렇다면 이 트로이 전쟁이 왜 중요하냐?

이 전쟁에서 너무 많은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이 죽고, 사실상 올림포스 신족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족이 전멸하게 된다. 따라서 온전한 인간의 시대인 "철의 시대"가 열리게 되며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엔딩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그리스 서사시들의 저자는 호메로스Homeros이고, 성서의 저자는 신이다.

둘은 모두 신화적 작가라는 특징을 가진다. 호메로스는 장님이었으며, 신은 사람들이 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그에 대한 형상을 만드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텍스트들이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문주의,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개혁의 시대인 1500년경으로 뛰어가보자. (1517년에 루터가 99개 조항의 격문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1. 1444년에 구텐베르크 Gutenberg는 마인츠에서 인쇄술을 발명했다. 이는 매체혁명을 의미했다. 인문주의자들이 재발견한 고대의 고전적 저술들이 이로써 사방으로 유포될 수 있다. 이 시기에 영주들은 국가권력을 자신들의 궁정으로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과 함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 계급은 궁정세력화되었고, 궁정의 과시적 문화를 따랐다. 그들은 궁정의 회화 장식과 왕립극장을 고대 영웅들과 신들이 사는 하늘의 모델에 따라 꾸몄다. 그리고 제우스와 아폴론, 아르테미스와 아프로디테 행세를 했으며 이에 상응하는 문학을 후원했다.

 

2. 이와 같은 시기에 종교개혁가들인 루터 Luther, 칼뱅 Calvin, 틴들 Tyndale (영국의 종교개혁가. 신약성서, 모세오경 등의 영역자. 순교자)은 사제들의 손에서 성서를 빼앗아 라틴어 성서를 민중의 언어로 번역했다. 이로써 모든 국민이 각자 자신의 사제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의 민주화를 의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 텍스트의 숭배도 아울러 의미했다.

 

여기서 (종교와 국가 간의 긴장이 가중된) 귀족문화와 시민문화가 혼합된 유럽 문화가 생겨났으며, 이것이 그후 유럽의 역동성과 불안정성의 원인이 되었다. 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들이 살던 시대를 소급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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